마감일만 적어 두면
성인 ADHD를 설명하는 관점 가운데 내가 붙잡고 싶은 건, 할 일을 안다는 것과 그 일을 제때 시작하고 이어 간다는 것이 서로 다르다는 대목이다. 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과제가 ‘지금’ 아니면 ‘지금 말고’로 느껴진다면, 마감일을 한 번 더 알려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다.
가령 한 달 뒤까지 제출할 글이 있다고 하자. 달력에는 제출일이 적혀 있다. 잊지 않게 표시도 했다. 그런데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여전히 비어 있다. 날짜는 분명한데 오늘 할 일은 막연한 상태. 기억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하기에는 그 사이가 꽤 크다.
이때 중간 마감과 다음 행동을 따로 적는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주에는 소재를 고르고, 오늘은 후보 하나를 적는 식으로. 글을 내야 한다는 같은 과제라도, 한 달 뒤의 날짜만 있을 때와 오늘 손댈 부분이 보일 때는 다르게 다가갈 여지가 있다. 알림도 그 구체적인 행동에 붙일 수 있고.
나는 이런 도움을 두고 성의가 부족한 사람에게 붙이는 감시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본인도 중요하다는 걸 아는데 시작과 조절이 어렵다는 설명을 받아들인다면,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는 말은 이미 아는 내용을 반복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달력에 잘게 나눠 쓰면 해결된다는 뜻까지 갈 수는 없다. 이 자료가 내게 허용하는 판단은 그보다 좁다. 마감일을 아는지 물었고 상대가 안다고 답했다. 그다음에도 시작할 수 있는지는 아직 묻지 않았다. 나는 그 두 번째 질문을 남겨 두고 싶다. 오늘 어디부터 손댈 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