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옆의 위치를 지우면

공간에 흩어진 측정값으로 빈 곳의 값을 예상하려면, 나는 숫자 옆에 붙은 위치부터 남겨 두고 싶다. 어디서 얻었는지가 관측값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숫자만 뽑아 놓아도 계산은 할 수 있다. 다만 그 계산으로 답하려던 질문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는 따로 봐야 한다.

가령 여러 지점에서 온도를 한 번씩 측정했다고 하자. 여기서는 설명을 위한 가정이다. 측정값 목록은 같은데, 한쪽에서는 지점들이 좁은 구역에 모여 있고 다른 쪽에서는 넓게 흩어져 있다. 목록만 보면 둘을 구별할 수 없다. 평균을 내도 같다. 그런데 측정하지 않은 어느 지점의 온도를 묻는 순간에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곳과 관측 지점들이 어떤 관계인지 알아야 하니까.

내가 붙잡는 차이는 이 정도다. 값이 몇 개 있는지에 더해, 그 값들이 서로 얼마나 떨어진 곳에서 나왔는지. 가까운 위치의 관측값들이 더 강하게 의존하는 자료라면, 가까이 모인 숫자들은 서로 무관한 숫자들처럼 취급하기 어렵다. 위치를 지운 목록에는 그 관계를 살필 단서가 빠져 있다.

그렇다고 가까운 값이 언제나 더 비슷하다고 정해 놓을 수는 없다. 공간 자료라는 이유만으로 거리에 따른 관계의 모양까지 주어지는 건 아니니까. 가까운 곳의 값을 우선 참고한다는 말은 출발점으로는 이해가 된다. 어느 거리까지 얼마나 참고할지는 아직 비어 있다.

이 빈칸을 다루는 데 공분산 함수나 베리오그램이 쓰인다. 이름은 조금 딱딱하다. 내가 여기서 보려는 것은 용어 자체보다, 위치에 따라 관측값들이 어떻게 함께 달라지는지를 모형 안에 표현한다는 점이다. ‘근처니까 비슷하겠지’ 하고 넘겼던 말에 구체적인 조건을 붙이는 셈이다.

앞의 온도 자료로 돌아가면, 같은 측정값 목록이라도 지점의 배치가 달라졌을 때 그 관계를 읽는 근거가 달라진다. 한쪽의 위치 정보를 다른 쪽의 위치 정보로 바꿔 붙여도 되는 게 아니다. 숫자는 손대지 않았는데 자료의 의미는 바뀔 수 있다. 나는 공간 자료에서 이 대목을 먼저 기억하고 싶다.

크리깅도 그다음에 놓인다. 관측값 사이의 의존 관계를 모형으로 정한 뒤, 그것을 이용해 관측하지 않은 위치를 예측하는 방법이다. 가까운 숫자 몇 개를 가져오는 요령 정도로 이해하면, 예측을 떠받치는 조건이 빠진다. 어떤 관계를 가정했는지가 예측과 함께 따라와야 한다.

여기서 지도에 매끄럽게 채워진 값을 실제로 측정한 값과 같은 자리에 놓고 싶지는 않다. 비어 있던 곳을 채울 수 있다는 것과 그곳을 관측했다는 것은 구별해야 한다. 예측값에는 사용한 관측 자료와 의존 관계의 모형이 걸려 있다. 그 조건에서 얼마나 불확실한지도 함께 다뤄야 하고.

물론 이 설명만으로 앞의 두 배치 중 어느 쪽이 더 좋은 예측을 낸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예측하려는 곳이 어디인지도 정하지 않았고, 의존 관계의 구체적인 모양도 주어지지 않았다. 넓게 흩어져 있으니 낫다거나, 촘촘하니 낫다는 결론까지 가기에는 빠진 것이 많다. 위치가 필요하다는 말이 특정 배치를 권하는 말은 아니다.

내가 남겨 두고 싶은 건 그보다 작은 판단이다. 온도 목록을 받아 빈 곳의 값을 묻는다면, 숫자를 더 들여다보기 전에 측정 지점이 표시된 자료도 같이 펼쳐 놓겠다. 지금 가진 숫자들이 어디까지의 이야기를 해 주는지 보려면. 아직 온도를 모르는 그 지점도 거기에 표시해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