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데 묶였다고 한목소리는 아니다

『The Seven Military Classics of Ancient China』는 병법서 일곱 편을 하나의 정전으로 다룬다. 그런데 포함된 글들은 서로 다른 시기와 전승을 지닌다. 함께 묶여 있다는 사실과 같은 주장을 한다는 판단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한데 모인 모습을 먼저 보고 나면, 그 간격을 그냥 지나치기 쉽다.

이를테면 그 안의 두 글에서 서로 다른 방향의 주장을 발견했다고 해 보자. 실제 구절을 옮기는 것은 아니고, 읽을 때 생길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다. 한 권의 책이라고 생각하면 앞뒤가 안 맞는다는 판단부터 나올 수 있다. 앞에서는 이렇게 말해 놓고 뒤에서는 왜 저렇게 말하지. 같은 사람이 말을 바꾼 듯이.

그렇다면 두 주장이 어긋나 보일 때, 그 어긋남을 없애는 설명부터 찾을 필요는 없겠다. 서로 다른 글이 다른 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을 먼저 남겨 둘 수 있다. 한 사람이 한 말을 읽을 때와는 순서가 조금 달라진다.

물론 차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 대립한다고 정할 수도 없다. 같은 문제를 다른 자리에서 설명했을 수도 있고, 서로 이어지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지금 주어진 개요만으로는 어느 쪽인지 알 수 없다. 내가 미리 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일곱 글이 한 묶음이니 마지막에는 하나의 답으로 맞아떨어져야 한다는 기대다.

‘고전’이라는 말은 그 기대를 자연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하나의 정전이라는 이름을 보면, 그 안에 잘 정리된 공통의 지혜가 들어 있을 것 같다. 읽는 쪽에서는 편하다. 여러 목소리를 일일이 구별하는 것보다 ‘옛 병법은 이렇게 말한다’고 적는 편이 훨씬 짧으니까.

하지만 짧게 적는 동안 말하는 사람이 사라질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확정된 저자 이름만을 뜻하지 않는다. 어떤 글에서 나온 주장인지, 다른 글도 거기에 동의하는지, 그 정도의 구별이다. 누가 썼는지 아직 분명하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텍스트라는 사실까지 지울 이유는 없다.

나는 이 구별이 정전의 권위를 깎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묶여 있다는 사실은 그대로다. 다만 그 사실에서 합의까지 읽어 내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여러 글을 한데 두었다면, 하나만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차이도 그 안에 남아 있을 수 있다. 꼭 그 차이를 잘 봉합해야 제대로 읽은 것은 아닐 테고.

여기서 편찬한 이들이 왜 이 글들을 골랐는지까지 짐작하고 싶지는 않다. 차이를 보존하려고 골랐는지, 공통점을 중시했는지,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이 설명만으로 알 수 없다. 지금의 내가 여러 목소리를 듣고 싶다고 해서 당시의 선택에도 그런 뜻을 넣을 수는 없다.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확인되는 것은 서로 다른 시기와 전승의 글들이 하나의 정전으로 함께 다뤄진다는 데까지다. 그 정도만 남겨도 읽는 태도는 달라질 수 있다. 어느 한 글의 말을 나머지 여섯 글의 입장으로 넓히기 전에 잠깐 멈추게 된다. 같은 묶음에 있다는 이유 말고도 함께 말한다고 볼 근거가 있는지.

앞에서 가정한 두 주장이 끝내 맞지 않는다면, 나는 우선 각각의 말로 두고 싶다. 어느 쪽이 더 설득력 있는지는 그다음에 따져도 된다. 병법의 지혜라는 큰 이름 아래 매번 화해시킬 필요는 없겠다. 읽다가 적어 둘 메모도 그 정도면 된다. 이 대목에서는 두 글의 생각이 다르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