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긴 초안을 몇 초 만에 내놓는 장면은 이제 별로 신기하지 않다. 오히려 그다음이 조금 이상하다.

문장이 매끈하면 사람은 일단 읽는 속도도 빨라진다. 아는 내용이 섞여 있으면 더 그렇다. 그런데 한 문단에 틀린 전제가 들어가면, 그 뒤의 문장들은 전부 그럴듯한 포장지가 된다. 결국 확인하려면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 한다. 빨리 만든 결과를 천천히 의심하는 일이 남는다.

내가 보기에는 AI의 비용을 계산할 때 여기서 자주 점프가 생긴다. 생성 시간이 줄었으니 생산성이 올랐다고 말한다. 그럴 수는 있다. 하지만 검증, 수정, 다시 요청하는 시간까지 줄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예를 들어 어떤 판단에 근거가 필요하다면, 답변 끝에 출처처럼 보이는 것이 붙어 있다고 끝난 게 아니다. 실제로 그 근거가 있는지, 지금 상황에도 맞는지, 빠진 조건은 없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 과정이 길어지면 AI는 일을 없앤 것이 아니라 검토할 문장을 늘린 셈이다.

그래서 좋은 도구는 말을 많이 만드는 도구보다, 내가 적게 확인해도 되는 흔적을 남기는 도구에 가깝다. 결론보다 과정이 좀 더 보이는 쪽이 낫다.

AI가 빨라질수록 사람은 덜 생각해도 될 것 같았다. 지금은 생각의 위치만 뒤로 밀린 것 같다.